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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교향곡 중에서도 5번과 6번은 같은 시기에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그러나 두 곡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데, 5번이 '전투와 승리'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6번은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유리우스 슈미트가 그린 '산책하는 베토벤' 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정장 차림의 베토벤이 뒷짐을 진 채

숲속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그림이 묘사하는 것처럼 베토벤에게 산책은 매우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귓병에 시달리며 유서까지 써야했던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을 거의 날마다 거닐었습니다.

요제피네를 향한 열정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다시금 교향곡 작곡에 손을 댔을 때도

그는 여전히 숲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연과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당시의 베토벤에게 크나큰 위안이었을 겁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가 불편할 정도로 귀가 안 들리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전의 그는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숲 속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렇게 베토벤에게 큰 위안을 줬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은 이제 '베토벤 산책로'라는 이름으로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향곡 6번은 바로 그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곡입니다.

교향곡 5번에 '운명'이라는 별칭을 붙인 것은 후대 사람들(주로 일본인)이었지만

교향곡 6번에 '전원'(Pastorale)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베토벤 자신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토벤은 이 곡의 5개 악장에 저마다 '표제'를 달아놨습니다.

1악장은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기분'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천둥, 폭풍우' 

5악장은 '목가,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감사와 기쁨' 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교향곡 6번을 '표제음악'(Program Music)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표제음악이란 작곡가가 '어떤 대상'을 표제로 내세우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대상'은 자연이나 풍경이 될 수 있고 특정한 줄거리나 사상 같은 관념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음(音)의 순수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절대음악'(Absolute Music)과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도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표제음악이하 할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물이나 풍경 혹은 줄거리나 관념을 묘사하는 표제음악은 19세기 이후의 낭만주의에서

특히 성행합니다.

문학과 음악이 하나로 섞이던 질풍노도의 시대였습니다.

대표적인 곡인 베를리오즈의 광기 넘치는 대작 <환상 교향곡>입니다.

물론 리스트도 '교향시'라는 장르를 통해 표제음악을 여러 곡 썼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자신의 6번째 교향곡이 '표제음악'으로만 규정되는 것을 우려했던것 같습니다.

그는 이 곡과 관련해 "정경묘사는 불필요하다. 음악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말하자면 음악적 화자(話者)의 감정과 심리상태가 '풍경'이라는 객관적 외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즉 이것은 주체의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베토벤의 매우

근대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원 교향곡을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1악장은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라는 지시어가 붙었습니다.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인데 숲으로 막 들어섰을 때의 즐거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이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에서 불리던 민요의 가락을 첫 번째 주제로 밝고 환하게 제시합니다.

2악장은 '안단테 몰토 모소' 라는 지시어인데 '느리게 매우 생동감 있게' 라는 뜻입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의 현악기들이 졸졸졸 흘러 가는 시냇물의 흐름을 끊임없이 묘사합니다.

부드럽고 청량한 화음이 가슴을 적셔주는 악장입니다.

많은 새소리가 등장하는데 플루트는 꾀꼬리를 오보에는 메추리를 클라리넷은 뻐꾸기의 지저귐을

그려냅니다.

이렇게 숲에서 들려오던 소리를 오선지에 옮기던 그때 베토벤은 귀가 거의

안들리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음악의 감동이 더 커집니다.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데 '알레그로(빠르게)' 템포로

활달한 기운이 넘칩니다.

즐겁고 유머러스한 스케르초풍의 악장입니다.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쉬지 않고 연주됩니다.

음악용어로는 '아타카'(attacca)라고 하는데

휴지부(休止符)없이 다음 악장을 계속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5악장 '알레그레토(조금빠르게)'는 클라리넷과 호른이 목가적 선율을 연주합니다.

베토벤이 스스로 붙여 놓은 표제처럼 안식과 감사의 느낌이 충만한 악장입니다.

일이 잘 안 풀려 짜증나거나 피곤할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에

귀를 기울여 보시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베토벤처럼 숲이나 산을 직접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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