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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헨델 - 메시아

돌아온아톰 2017. 4. 23. 17:11

헨델은 1685년 2월23일 독일 작센의 할레에서 태어났습니다.

튀링겐의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에서 테어난 바흐보다 약 한 달 먼저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평생동안 직접 대면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서로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죠. 헨델은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던 바흐와 달리 외과의사 겸

이발사였던 게오르크 헨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옛날에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 표지등은 외과병원 표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 색깔이 동맥과 정맥을 뜻했습니다.

헨델은 어릴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는 법학을 공부하기를 원했습니다.

아들이 열두 살때 세상을 떠나면서 법과대학에 가라는 유언을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헨델은 아버지의 유언을 뒤로하고 1703년에 그러니까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함부르크를 향해 떠납니다. 청운의 뜻을 펴보려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는 대도시 함부르크의 중요한 음악가들과 친분을 쌓아가면서 1705년 1월에 최초의 오페라

<알미라>를 공연해 커다란 성공을 거둡니다.

젊은 헨델은 이 성공에 상당히 고무되며 오페라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장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바로크 음악의 종주국 특히 오페라의 발상지인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스물다섯 살에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귀환한 그는 하노버 궁정의 악장직을 맡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영국 런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헨델이 하노버에서 받았던 대우는 파격적이었다고 합니다.

같은 해에 태어난 바흐가 바이마르 궁정에서 80플로린을 겨우 받았지만 헨델은 그 여섯 배가 넘는

500플로린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더 큰 물에서 놀기를 원했고 결국 이듬해에 휴가를 얻어 런던으로 가게됩니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런던에서 음악적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던 헨델의 행보가 그렇게 시작됩니다.

당시 런던의 음악계는 자신들에게 화려한 이탈리아풍의 또한 영어나 독일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쓰인 오페라를 멋들어지게 들려줄 음악가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헨델이야말로 그러한 시간과 공간의 선택을 받은 음악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헨델은 그 모든 것을 내다볼 줄 아는 야심가이기도 했습니다.

 

헨델은 런던에서 음악적 성공과 더불어 엄청난 재산까지 모았지만 부귀영화가 언제나 그의

편일 수는 없었습니다.

헨델이 구사했던 오페라는 주로 왕과 귀족의 취향에 맞춘 화려한 이탈리아어 오페라였지만

당시의 런던에서는 그와 대조적인 또 하나의 흐름이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던 시민계급의 요구를 반영한 아울러 영국어로 쓰인

오페라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런던은 금융업과 주식투자가 성행했을 뿐 아니라 공연제작 투자도 빈번했습니다.

음악적 재능과 사업가적 기질까지 다분했던 헨델이 그런 기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아 요즘날로 치면 펀딩을 받아서 직접 오페라단을 운영했습니다.

처음에는 잘되는 듯하다가 결국 된서리를 맞아 크게 파산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때의 여파로 헨델은 중풍에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헨델이라는 사람의 의지력은 남다른데가 있습니다.

그는 중풍이 발병하자 독일로 돌아가는데 아헨에서 온천치료를 통해 병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의사가 하루에 두 시간 동안 온천치료를 권하면 헨델은 아예 열두 시간씩 온천에 들어가 버텼다고 합니다.

그렇게 몸을 회복한 헨델은 1737년 10월에 런던으로 귀환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음악적 방향을 선회하는데 영어를 가사로 삼은 오라토리오 작곡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라토리오는 헨델의 말년을 대표하는 장르가 됩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작곡했던 오라토리오는 모두 32곡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중 대다수의 곡은 중풍을 이겨낸 이후 작곡된 것입니다.

물론 헨델이 오라토리오에 몰두했던 또다른 이유는 '경제성'이었습니다.

오라토리오는 줄거리르 가진 극음악임에도 오페라만큼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페라 흥행 작곡가'로 한 시절을 살았던 헨델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현실적 답안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1741년에 작곡했습니다.

8월22일 부터 9월14일까지 24일 만에 작곡을 마쳤다고 합니다.

<메시아>는 모두 3부로 이뤄진 종교적 극음악입니다.

1부 '예언과 탄생'은 6일 만에, 2부 '수난과 속죄'는 9일 만에, 3부 '부활과 영생'을 3일만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관현악 편곡 작업은 이틀 만에 끝냈다고 합니다.

연주시간 2시간이 넘는 대곡을 이렇게 순식간에 작곡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전해지느 바에 의하면 헨델은 거의 침식조차 잊은 채 작곡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초연은 1742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이뤄졌습니다.

런던 초연은 그보다 8년 뒤인 1750년이었습니다.

이때 국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되는 순간에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즘도 할렐루야 합창이 나올 대 청중이 기립하는 전통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메시아>는 헨델의 명실상부한 걸작입니다.

내용은 기독교 음악이지만 헨델이 오페라에서 보여줬던 드라마틱하고 서정적인 표현력이

오라토리오에서도 여전히 구사되고 있습니다.

매혹적인 선율과 화려한 기교의 창법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다른 오라토리오들도 그렇듯이 <메시아>도 관현악 서곡으로 시작해 합창과 중창 아리아 등이 번갈아가며

흘러나옵니다.

특히 헨델은 합창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당대의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작곡 솜씨를 보여줍니다.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모두 53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애청되는 곡은 2부 마지막에 등장하는 합창  전체로 보자면 44번째 곡인

'할렐루야 합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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