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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음악가들 중에서 음악에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인물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가
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마지막에 자리하는 이 음악가는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어린 시절에 들었던
군대의 행진음악 아버지가 운영하던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 가락 농부들의 소박한 춤곡
거리를 떠도는 장돌뱅이들의 음악을 과감하게 자신의 교향곡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말러를 '혼종의 음악가' '융합의 음악가'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물론 말러 이전에도 기존의 어떤 선율을 차용했던 작곡가들은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그랬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에게서도 이런 식의 차용 기법은 종종 발견됩니다.
하지만 말러처럼 세속적 선율을 교향곡 속으로 과감히 끌어들인 작곡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감수성이 활짝 열린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들 그래서 자신의 몸속에 저장돼 있던 그 익숙한
선율들을 '교향악적 재료'로 사용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혼종성이야말로 그의 음악이 오늘날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말러는 흔히 낭만주의 교향곡의 마지막 방점을 찍은 작곡가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의 경계를 허물면서 모더니즘의 전망을 보여준 음악가라는 사실도 함께
기억돼야 할 겁니다.
베토벤이 고전과 낭만을 동시에 품었던 것처럼 말러의 음악도 낭만과 현대를 함께 끌어안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종합되지 못한채 때때로 분열의 양상으로 즉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당대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말라가 혹평 받았던 이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상함과 퇴폐 서정과 광기 공포와 안식 세속적 갈등과 영원함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로 뒤범벅된 그의 음악에 많은 이들이 마음을 뺏기고 있습니다.
어릴 적 불렀던 동요 가은데 '아 유 슬리핑, 아 유 슬리핑, 브러더 존...'하면서 시작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영어로 써보자면 'are you sleeping, are you sleeping, brother John..'이 됩니다.
제목이 'Brother John'인데 예닐곱 살의 소녀가 잠꾸러기 동생을 깨우면서 부르는 돌림노래 형식의
동요입니다. 사실 이노래는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불렸습니다.
아마 18세기 초반 무렵일 겁니다. 애초의 제목은 '플레르 자크' 였습니다.
이어서 오스트리아에서 유행했죠. 제목이 'Bruder Martin'으로 바뀝니다.
또 이것이 영어권으로 건너가면서 'Brother John'으로 다시 한번 바뀝니다.
그런데 이 제목은 '동생 마르틴'이나 '동생 요한'이 아니라 '마르틴 수사' 혹은 '요한 수사'로
번역되는게 맞습니다.
수사란 카톨릭의 수도자를 일컫는 말인데 말하자면 애초에는 게으른 수사들을 빈정대며 부르는
노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남동생'으로 바뀌며 '잠꾸러기 동생을 깨우면서 부르는 노래' 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51세에 세상을 떠난 말러는 생전에 모두 9곡의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첫 번째 교향곡을 구상한 것은 20대 중반부터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작곡은 1888년 초에 이뤄졌습니다.
<Bruder Martin>의 선율은 이 교향곡의 3악장 첫머리에서
들려옵니다. 그런데 선율이 괴기스럽고 비틀려 있습니다.
원래 이 노래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고 어린아이들이
딱 좋아할 만한 유쾌하고 코믹한 돌림노래였는데 말러의 교향곡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팀파니가 둥둥거리는 가운데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선율이 음산합니다.
말러는 애초에 D장조였던 선율을 d단조로 바꿔 괴기스러운 느낌의 장송을 묘하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첫 번째 교향곡에서 부터 희극을 비극으로 치환하는 독특한 패러디를 선보입니다.
물론 지금의 감각으로 듣노라면 그 장송은 아름답게 들리기도 하지만 당대인 1889년 11월
부다페스트에서 말러가 직접 지휘해 이 곡이 초연됐을 때 청중이 매우 큰 당혹감을 느꼈을 겁니다.
<교향곡 1번>의 표제인 '거인'(Titan)은 작곡가 스스로 붙인 제목입니다.
연주시간 50분으로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는 비교적 길이가 짧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은 작곡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말러의 서정성이 짙게 배어 있는 곡입니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 말러의 제자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이곡을 일컬어 "말러의 베르테르"
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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