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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베토벤 - 비창소나타

돌아온아톰 2017. 4. 28. 13:24

모차르트와 더불어 서양음악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베토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의 삶은 그야말로 폭풍과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고통스런 유년시기와 불행으로 얼룩졌던 가족사, 작곡가로서 가장 청천벽력과 같은

고통인 청력상실 등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살아온 베토벤이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절벽을 손톱만으로 찍어 오르는 듯한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세계 음악사에 위대한 '승리자'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사실 음악에 문외한 일지라도 그가 작곡한 "환희의 송가" 한 곡만 들으면

가슴 속에서 벅차게 밀려오는 감동과 흥분을 감출 수 없게 됩니다.

베토벤이 작곡한 한 곡, 한 곡은 그의 험난했던 인생노정이 고스란히 스며 녹아들어간

인생의 발자취요, 베토벤이라는 개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개 예술가는 나약하고, 여리며, 감수성이 예민하고, 건들면 깨질듯한 '유리멘탈'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아주 강렬하고, 열정이 넘치고, 때론 투박한 남성미가 넘치고, 때론 지극히 부드러운

여성미가 돋보이며, 그야말로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그만의 독특한 색채가 있습니다.

이러한 베토벤의 색채가 아주 마음에 들고,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나는 베토벤과 영원히 함께 살아갈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이 40대 시절에 어떤 인터뷰에서 했던 말입니다.

당시의 브렌델은 이미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완주한 뒤였습니다.

그래서 음반회사와 하이든의 소나타를 차기작으로 녹음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 피아니스트에게 최고의 음악은 언제나 베토벤이었나 봅니다.

브렌델은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충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합니다.

"나는 지금 40대이지만 아직도 배우고 익혀야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나는 언제나 베토벤의 작품에서 새로운 신비를 발견하며, 이러한 발견은 계속

이뤄져야 한다. 내가 만약 베토벤의 총체성을 성취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처럼 슬픈 일도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베토벤의 작품들은 대단히

복잡하며, 그의 작품 속에 투여된 새로운 통찰들을 발견하는 일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소나타는 모두 32곡입니다.

베토벤은 작곡가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덕분에 그의 초기 음악은 주로 피아노 분야에 집중돼 있습니다.

아울러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뛰어난

피아노 연주실력에 기인합니다.

실제로 베토벤은 열두 살이던 1782년에 독일 쾰른 선제후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 조수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2년 뒤에는 제2 오르간 연주자로 공식 임명됩니다.

그것이 음악가로서 베토벤의 첫 번째 공식 직책이었습니다.

일설에는 여덟 살 때 이미 쾰른의 한 음악회에서

피아니스트로서 주목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쾰른 선제후 공국의

수도였던 본을 중심으로 상당히 알려졌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알려져 있다시피 어린 베토벤의 뛰어난 연주실력 이면에는

평탄치 않았던 가족사가 깔려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 요한(Johann van Beethoven)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쾰른 궁정의 테너가수였습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연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다지 실력있는 음악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베토벤의 할아버지인 루트비히도 궁정의 악장이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당시 그 지역의 음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연주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말로 치자면 '재테크'에 꽤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궁정 악장으로 일하면서 포도주 사업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요한은 어릴 때부터 '술맛'에 깊숙이 빠져듭니다.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맙니다.

어린 베토벤은 술 냄새 풍기는 아버지한테 매를 맞으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당연히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었을 겁니다.

일곱 형제들 가운데 셋만 살아남았는데, 그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폭력은 거의 일상적인 공포였을 겁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시달리던 어머니 마리아(Maria Magdalena Keverich)는

마흔한 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베토벤이 열일곱 살 때입니다.

훗날의 베토벤이 보여줬던 괴팍함의 밑바닥에는 그런 상처가 자리해 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의 잇따른 죽음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베토벤의 유년기는 훗날의 음악가

'말러'를 떠오르게 합니다.

어쨌든 베토벤은 선제후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로 채용된 1784년 부터

술취해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돈벌이에 나서야 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3년 뒤에는 선제후의 허락을 받고 빈으로 떠나 모차르트에게

피아노를 사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제 관계로까지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망 때문에 곧바로 본으로 귀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베토벤은 어머니마저 떠난 집안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하지만 이 시절의 베토벤, 그러니까 스무 살 무렵의 루트비히가 생계에만 매달려 있던건 아닙니다.

그때를 보자면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혁명의 열기가 유럽 곳곳으로 퍼져가던 때였습니다.

프랑스와 가까운 본 지역에도 계몽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베토벤은 본 대학의 청강생으로 칸트 철학과 독일 문학 강의를 들었고,

스승인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가 이끄는 독서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베토벤의 음악 스승이었던 네페는 계몽주의 비밀단체였던

'일루미나티'의 열성적인 지지자였습니다.

그렇게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한 것은 1792년입니다.

이때부터 1802년 까지를 흔히 '초기 빈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스물두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입니다.

본과 쾰른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처럼, 베토벤은 빈에 도착해서도 역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립니다.

특히 1795년 3월에 가졌던 빈에서의 첫 번째 공개연주회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날 베토벤이 연주한 곡은 모차르트의 협주곡 한 곡과 자신이 이틀 전에 완성한

최초의 협주곡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청중을 완전히 흥분시켰던 것은 베토벤이 즉석에서 선보인 즉흥연주였습니다.

그렇게 베토벤은 빈에서 주목 받기 시작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렸습니다.

베토벤의 생애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귀족들,

예컨대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루돌프 대공 같은 이들이 너도나도 후원자로 나섰습니다.

베토벤은 귀족들의 살롱에 초대받아 연주했고, 그에게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귀족 집안의 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이른바 '불멸의 여인' 후보로 추정되는 브룬스비크 집안의 두 딸인

테레제와 요제피네 그리고 귀차르디 백작의 딸인 줄리에타도 있었습니다.

이 시절의 베토벤은 유난히 피아노 소나타를 많이 썼습니다.

1795년 부터 1799녀 사이에 작품번호를 가진 피아노소나타를 12곡이나 써냅니다.

물론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도 그중 하나입니다.

1798년, 혹은 1799년에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비창' 이라는 표제는 여러 이설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에서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인 곡은 <8번 비창>과 <26번 고별>밖에

없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 예컨대 악보 출판업자나 후대의 시인 등이 붙인 속칭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어쨌든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였다는 것은,

이 음악을 통해 베토벤이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일 겁니다.

물론 어떤 음악사가들은 '비극적 정조'를 공표함으로써 악보구매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려 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아노 소나타'라는 장르의 특성, 피아노 한 대로 작곡가 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비창'이라는 표제는 당시의 베토벤이 가졌던

어떤 감정상태와 관련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피아노 소나타 '비창'은 베토벤이 외관상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절에 쓴 '슬픈 노래'인 셈입니다.

20대의 마지막 무렵에 느꼈을 법한 청년의 애상감이 곡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악장 도입부에는 '그라베(Grave)'라는 지시가 붙었습니다.

'느리고 장엄하게'라는 뜻입니다.

이 곡은 그렇게 교향곡적인 웅장함으로 문을 엽니다.

아주 드라마틱한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상승하는 음형들이 트레몰로 주법으로 펼쳐지는 첫 번째 주제,

그리고 독특한 장식음 효과를 펼쳐내면서 빠르게 알아가는 듯한 두번째

주제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악장이 끝나갈 무렵 다시 한 번 그라베의 서주를 펼쳐내다가, 빠른 알레그로 템포로

속도가 전환되면서 어두운 열정을 느끼게 하는 첫 번째 주제를 한 차례 더 연주합니다.

2악장은 느리게 노래하는 '아다지오 칸타빌레'악장입니다.

아름다운 주제 선율이 아주 느린 템포로 연주됩니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팝음악 '미드나이트 블루'에서 차용했던 유명한 선율입니다.

2악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는 아름다운 주제 선율을 느린 템포로 제시하고 변주합니다.

애상감을 풍기는 단조의 부차적인 주제가 잠시 나타나는가 싶더니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옵니다.

이어서 매우 애틋한 정조를 풍기는 2부로 들어섭니다.

템포가 약간 빨라지면서 음악적 긴장감을 살짝 끌어올립니다.

'따따딴, 따따딴' 하는 셋잇단음표의 반주가 곁들여지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그 셋잇단음표의 반주를 계속 이어가면서

주제선율을 다시 한 번 연주합니다.

긴 여운을 남기는 악장입니다.

3악장은 빨라집니다.

주제가 삽입부를 사이에 두고 계속 반복되는 론도 형식의 악장입니다.

악장의 시작과 동시에 연주되는, 빠르고 유연하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이 감도는

주제선율이 인상적입니다.

잠시 삽입부가 연주되다가 다시 주제가 등장하는 장면이 모두 세 차례 펼쳐집니다.

론도 주제만 잘 붙잡고 있으면 누구나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이 살짝 잦아드는가 싶다가,

아주 강렬한 코다(종결)로 곡이 끝납니다.

비창과 관련해서 어떤 음반이 좋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을 겁니다.

물론 인터넷으로 듣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인터넷음악은 뭔가 부족합니다.

상황이 된다면 직접 음반을 구매해서 들어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베토벤은 32곡의 주옥같은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32곡 전곡을 들어보심이 좋습니다.

베토벤이 스물여섯 살에 작곡한 1번부터 52세에 작곡한 마지막 32번까지

가능하면 전집 음반을 하나 구입하는게 별도로 한 장씩 사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입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피아니스트로는 아르투르 슈나벨, 빌헬름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프리드리히 굴다 등이 있습니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브렌델도 전곡을  세 번이나 녹음했습니다.

전곡을 다 녹음하진 않았지만 에밀 길렐스의 연주도 놓치기 아깝습니다.

이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는 1972년 부터 1986년까지 DG레이블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69세엿던 1085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전집에는 1번, 9번, 22번, 32번이 빠져 있습니다.

 

각설하고 몇가지 추천음반을 소개한다면..

1. 빌헬름 켐프(1965년. DG)

가장 먼저 들어볼 필요가 있는 연주입니다. 베토벤의 소나타에 한정한다면, 빌헬름 켐프와 에밀 길렐스는

'처음 만나는 명연'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비창>에 한정한다면 길렐스보다 켐프 쪽에 더 손이 갑니다.

램프는 힘이 있다거나 열정을 뿜어내는 연주를 펼치진 않습니다.

가늘고 섬세하면서, 어떤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연주입니다.

선율의 매혹보다는 음악의 전체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힘을 느끼게 합니다.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는 템포가 약간 빠릅니다. 론도 형식의 3악장에서 탄탄한 구조미의 구축이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 알프레트 브렌델(1975년. Philips)

알프레트 브렌델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모두 세 차례 녹음했습니다.

<비창>의 경우는 1975년 녹음한 음반이 국내 라이선스로 발매돼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비창 외에도 14번 월광, 15번 전원, 17번 템페스트,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 26번 고별을 커플링한 CD2장짜리 음반입니다.

말하자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대중이 가장 좋아할 만한 곡들을 모은 음반입니다.

덕분에 이 음반은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즉 손쉽고 저렴하게 베토벤 소나타의 중요 곡들을 음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브렌델이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구하려고 한다면 1990년대에 디지털로 녹음한 음반을 권해드립니다.

3. 클라우디오 아라우(1980년대. Philips)

남미 칠레 출신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만년에 접어들어 베토벤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모노 시절이었던 1954년부터 몇 차례 <비창>을 녹음했지만, 그중에서도 1980년대에 이뤄진 만년의 디지털 녹음을 권해드립니다.

아라우는 1984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이었던 1990년까지 베토벤 소나타 전곡녹음에 매진했습니다.

14번 월광과 29번 함머클라비어는 아쉽게도 녹음하지 못했습니다.

필립스에서 녹음했던 CD 11장의 전집이 바로 그 마지막 유산입니다.

낭만적인 감성과 높은 정신성이 함께 느껴지는 명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음반의 특성은 <비창>의 짙은 음영, 영롱한 음색이 가슴을 파고든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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