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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클래식'이라는 용어를 쓸 때, 그것은 서양음악 전반을 가리키는 의미로 흔히 사용됩니다.
중세부터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 등 서양음악 전반을 통틀어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클래식'이라는 말은 고전주의 음악을 지칭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스트리아 빈에서 완성된 고전주의, 그러니까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시대를
관통했던 음악적 양식과 그 흐름을 일컫는 것입니다.
약간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바흐가 타계한 1750년부터 베토벤이 세상을 뜬 1827년까지를 고전주의 시대라 칭합니다.
사상적으로 계몽주의가 융성하고 시민계급이 새로운 시대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던, 이른바 근대의 초입입니다.
그런데 이 고전주의는 음악사의 사전적 의미를 종종 뛰어넘어 '어떤 태도'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글쓰기에 비유한다면, 문장의 주술관계와 조사, 어미의 활용 등에서 문법에 딱딱 맞게 글을 쓰는 경우를
'고전적'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했던 교과서의 문장들이 대체로 고전적이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좀 나이가 들게 되면 이런 식의 틀이 슬슬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단조로운 문법을 되풀이하는 것에서 벗어나 나름의 멋과 개성을 담아보려는 자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그런 자의식이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문장의 주술관계를 슬쩍 뒤바꾼다거나 조사와 어미도 기존의 것을 슬며시 변형시켜 새로운 형태를 만들려고 했던
선구자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엄청난 정신의 힘을 요구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라는 개인적 격랑을 거치면서 자신의 새로운 돛을 올리게 됩니다.
그 장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곡이 교향곡 3번 '에로이카'였습니다.
교향곡 3번이 보여주는 힘찬 리듬과 확장된 규모는 이전의 교향곡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베토벤은 3박자로 진행되는 악구에서 과감하게 2박자의 리듬을 개입시켜 당김음의 효과를 냅니다.
완고한 고전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일종의 이단적 행위였겠지만, 베토벤은 그런 식의 과감한 시도를 통해
막강한 음악적 추진력을 얻어냅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인 동시에, 결코 '고전주의'라는 틀에 가둘 수 없는 작곡가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c단조는 베토벤이 남긴 아홉 개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3번을 완성한 1804년에 작곡을 시작했다가 잠시 중단했는데, 그 이유는 요제피네 폰 다임
(Josephine von Deym(1779-1821)) 백작 부인을 향한 연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여인이 누구인고 하니, 베토벤이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을 헌정했던 프란츠 폰 브룬스비크 백작의 누이동생입니다.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브룬스비크에게는 누이가 둘 있었는데 위로는 테레제, 동생은 요제피네였습니다.
베토벤은 1800년부터 테레제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연모의 마음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1949년에 발견된 베토벤의 연애편지 13통을 통해 동생 요제피네도 사랑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집니다.
1994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이라는 영화를 보면, 연극무대 출신의 명배우
게리올드만이 베토벤 역으로 나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1827년 오스트리아 빈, 베토벤의 장례식입니다.
베토벤이 남긴 유품 속에서 편지 한 통이 발견되는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베토벤이 어떤 여인을 '불멸'이라 칭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넘긴다는 편지였습니다.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며 나의 분신이여...... 잠자리에 누워서도 온통 당신 생각뿐이오. 내 불멸의 연인이여.'
이토록 절절한 사랑의 대상이 과연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베토벤의 제자이자 오늘날로 치면 매니저이기도 했던 안톤 쉰틀러가 편지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여인을
찾아 나섭니다. 영화<불멸의 연인>은 바로 그 여인을 찾는 과정을 약간의 추리기법을 곁들여 그려가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지칭한 '불멸의 연인'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음악사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이 줄리에타 귀차르디입니다.
베토벤이 서른 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던 14세 연하의 아가씨였는데, 그녀는 앞서 언급한 테레제와 요제피네의
사촌이었습니다.
베토벤은 실제로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 바로 그녀에게 헌정된 곡입니다.
말하자면 베토벤은 줄리에타와 테레제에게 거의 동시에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그 두 여인은 모두 '불멸의 연인'
후보에 올라 있습니다.
거기에 요제피네까지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베토벤은 한 집안의 자매와 사촌까지
두루두루 마음에 뒀던 셈입니다.
하지만 과연 누가 '불멸의 연인'이었는지는 여전히 확실치 않습니다.
세 명의 여인 가운데 한 명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여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베토벤이 교향곡 5번의 작곡을 잠시 중단했던 이유는 요제피네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의 베토벤은 격렬하고 투쟁적인 곡을 쓰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룹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다가 요제피네와의 사랑이 좌절에 부딪치면서 다시 교향곡 5번의 악보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이 1807년이었고 이듬해에 드디어 곡을 완성합니다.
그러니까 곡의 구성에서 완성까지 5년의 세월이 걸렸던 셈입니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에서 보여줬던 '고난과 투쟁, 그리고 승리'의 드라마를 한층 더 밀고 나갑니다.
클래식을 별로 안 듣는 분들도 이 곡의 1악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4개의 음, 이른바 '운명의 동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죠. 베토벤은 이에 대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고 말했다고 합니다.
안톤 쉰틀러가 쓴 베토벤 전기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실제로 베토벤이 그렇게 말했는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운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교향곡 3번에는 베토벤 스스로 '에로이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교향곡 5번을 따라다니는 '운명'이라는 별칭은
후대 사람들의 작명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1악장은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힘차고 빠르게)로 시작합니다.
교향곡의 역사에서 이처럼 격렬하게 문을 여는 1악장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두운 시련의 느낌이 가득하지만 자세히 듣노라면 다가올 여명을 간간히 암시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총주(연주에 참가하는 모든 주자가 동시에 연주하는 것)가 운명의 동기를 1주제로 제시하고,
이어서 호른과 바이올린이 2주제를 노래합니다.
단호하고 남성적인 리듬으로 막을 내리는, 전체적으로 긴장감 넘치는 악장입니다.
2악장에는 안단테 콘 모토(Andante con moto:느리게 그러나 활기차게)라는 지시어가 붙었습니다.
비올라와 첼로 등의 현악기들이 첫 번째 주제를 연주하고, 이어서 두 번째 주제를 클라리넷과 파곳 등의
목관악기들이 연주합니다.
이 두 개의 주제를 여러 차례 변주하는데, 전체적으로 약간 어두우면서도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풍기는 악장입니다.
격렬한 1악장과 부드러운 2악장의 관계를 긴장과 이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악장은 알레그로(빠르게) 템포의 스케르초입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약음(弱音)으로 문을 열었다가 바이올린이 그것을 이어받은 후,
호른이 '운명의 동기'가 변형된 악구를 우렁차게 또는 갑작스럽게 터뜨립니다.
이어서 잠시의 고요함 그러다가 조금씩 꿈틀거리면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합니다.
전체적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면서 스케르초 악장다운 유머를 구사합니다.
4악장 알레그로는 마침내 환희의 악장입니다.
오케스트라 총주가 먹구름을 뚫고 마침내 솟아오른 햇살처럼 승리의 주제를 노래합니다.
이어서 바이올린이 두 번째 주제를 활달하게 연주합니다.
중간쯤에 3악장 스케르초의 마지막 부분을 잠시 회상하다가 다시 맹렬한 기세로 돌진합니다.
마지막 코다(결미)는 장엄한 기백이 넘치는 승리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교향곡 5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향곡3번 E플랫장조 에로이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교향곡 3번'은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베토벤은 32살이었던 1802년,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한적한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상황이 아주 나빴습니다. 몇 년 전부터 골칫거리였던 귓병이 날로 악화돼 아예 '치유불능' 판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당시의 베토벤은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난치병과 창작의 고통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차라리 죽음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가 이때 쓰여 집니다.
두 동생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편지 형식의 유서였습니다.
"이대로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
다행히 베토벤은 죽지 않았습니다.
유서는 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은채 책상속에 잠들어 있다가 사후에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은 죽음대신, 이른바 '걸작의 숲'으로 성큼 들어섭니다.
그 문을 활짝 여는 곡이 바로 교향곡 3번 '에로이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 이전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커다란 규모, 격렬하게 부딪히는 긴장과 이완이 듣는 이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곡입니다.
연주시간 약50분에 달하는 이 장대한 교향곡은 마치 '음악이 가야 할 길이 바뀌었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베토벤은 귀족의 비위를 맞춰주던 산뜻한 선율과 형식을 가차 없이 파괴했고,
그리하여 음악은 그 자체로 묵직한 존재감을 얻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낭만'의 시대가 '에로이카'로부터 열립니다.
이 교향곡이 걸작인 이유는 고전 속에 낭만을 , 낭만 속에 고전을 품고 있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식을 중시했던 고전주의와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을 강조하는 낭만주의가 하나의 음악 속에서 뜨겁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대립을 하나로 끌어안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창작은, 적어도 베토벤 같은 예술가에게 창작이란 하나의 전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이 위대한 교향곡은 당시의 청중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낯설고 괴상했겠지만 이 곡은 생전의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과 더불어 가장 큰 자부심을
가졌던 교향곡입니다.
알려져 있듯이 이탈리아어 '에로이카'는 '영웅'이라는 뜻입니다.
이곡에 영웅이라는 부제가 붙게 된 이유는 나폴레옹과 관련이 깊습니다.
다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한 기대와 흠모가 베토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예술가들에게 매우 일반적
태도였다는 점입니다.
특히 괴테의 나폴레옹 숭배는 유명합니다. 당시는 프랑스혁명의 후반기였습니다.
포병장교 출신으로 왕정 쿠데타 진압에 성공한 나폴레옹이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유럽 지식인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생각하면서 이 곡을 작곡했다는 것은 검증된 정설입니다.
현재 오스트리아 빈에 보관돼 있는 악보의 표지에는 베토벤이 '보나파르트'라는 글자를 지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대신 이 곡은 '신포니아 에로이카'라는 제목으로 1806년에 출판됐습니다.
베토벤의 '영웅상(像)'은 또 있었습니다.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끝없는 형벌을 겪어야 하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야말로 베토벤의 원형적 영웅상이었습니다.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새로운도덕과 질서' 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공화주의자로서의 이상과 일치하는 해석입니다.
베토벤은 에로이카를 쓰기전인 1800년에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라는
발레음악을 작곡하는데, 바로 이 음악에 그 유명한 '영웅 모티브'를 등장시킵니다.
가장 마지막 곡인 16곡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베토벤은 이 모티브를 교향곡 3번에도 그대로 가져옵니다.
마지막 4악장에서 포르테시모의 강렬한 서주가 터져 나온 직후,
저음의 현악기들이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하는 첫 번째 주제가 바로 그 '영웅 모티브'입니다.
교향곡 3번 에로이카는 그렇게, 인류를 위해 고난을 뚫고 전진하는 '남성적 영웅상'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1악장 첫머리에서 터져 나오는 두 개의 화음부터 매우 단호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어서 저음의 현악기들이 잔잔하면서도 엄숙한
선율을 첫 번째 주제로 제시합니다.
클라리넷이 두 번째 주제를 부드럽게 연주하다가 바이올린이 이어받습니다.
현악기들이 짧은 음형을 잔물결처럼 묘사하다가 다시 그것들이 커다란 흐름으로 합쳐지는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렇게 분산과 통합을 반복하면서 매우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악장입니다.
느린 템포의 2악장은 그 유명한 장송행진곡입니다.
마치 관을 메고 행진하는 듯한 걸음걸이를 현악기들이 느릿하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때, 지휘자 쿠세비츠키가 바로 이 두번 째 악장을 조곡으로 연주했습니다.
반면에 3악장은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짧은 음표를 약간 수다스런 느낌으로 연주하다가, 다른 악기들이 가세하면서 점점 더 크고 무거워지는 진행을 보입니다.
특히 악장 중간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호른 선율이 인상적입니다.
4악장을 들을때는 앞서 얘기했던 '영웅 모티브'를 기억하면 좋은데, 잔잔함과 강렬함을 반복하면서 다이내믹한 종결부로 치달려가는 '베토벤의 힘'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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