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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베토벤 - 월광소나타

돌아온아톰 2017. 4. 28. 13:11

베토벤은 정치적으로 공화주의자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그 시절의 예술가들은 왕정보다는 공화정을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사랑한 여인들이 하나같이 귀족 집안의 딸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모차르트와 매우 다른 면모였습니다.

모차르트는 워낙 어릴때부터 귀족들의 총애를 받았을 뿐더러 궁정에서 공주들하고 함께 놀았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유사 귀족'으로 착각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 밑에서 '음악하인'으로 일하던 시절에 "나는 식탁에서 서열이 가장 낮다"고

불평을 터트렸던 이면에는 그런 자의식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결혼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분명히 현실적이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차르트의 아내가 된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머물렀던 하숙집의 셋째 딸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평민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음악도 그렇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어딘지 현실에 순응하는 태도, 비록 힘들지라도 자신의 운명을

결국 수긍하고 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정치적으로 공화정을 지지했던 베토벤이 귀족의 딸들을 사랑했던 것은 얼핏 자기모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토벤은 사랑에서도 '신분의 벽'을 넘어서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베토벤이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귀족과 평민이 계급장을 떼고 함께 사는 세상을 궁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생각해 봅니다.

물론 정치적 권력을 누가 잡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보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평등함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랑과 결혼일 수도 있습니다.

귀족과 평민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것 입니다.

다시 말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아마  궁극적인 평등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모르겠지만 결혼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결혼의 계급성은 여전합니다.

어차피 결혼이라는 제도는 애초부터 계급사회의 산물이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오늘 올리는 곡은 <피아노 소나타 14번 c샤프단조>인데 베토벤이 1801년에

작곡한 곡입니다.

베토벤은 1792년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했고, 그때부터 1802년까지를 흔히 '초기 빈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스물두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입니다.

베토벤으로서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던, 아주 행복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적 후원자들이 줄줄이 나섰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레슨을 받겠다는 귀족 집안의 딸들도 하나둘씩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삶에는 좋은 일만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베토벤도 그랬습니다.

서른 살을 갓 넘었을 무렵, 그의 생애를 평생 따라다녔던 어두운 그림자가 마침내 찾아옵니다.

바로 청력 이상이었습니다.

베토벤은 고향인 본에서부터 우정을 나눴던 친구인 의사 프란츠 베겔러에게 1801년 6월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나는 정말 비참하다네. 2년 전부터 사교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다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지. 나는 이제 귀가 들리지 않는다네. 만약 내 직업이 다른 것이었다면

이런 병을 가졌더라도 지장이 없겠지. 그러나 내게는 정말 끔찍하다네"

베토벤은 이틀 후에 역시 절친한 친구인 목사 카를 아멘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같은 고통을 털어놓습니다.

"내 청력이 심하게 나빠졌다네. 자네와 함께 있을 때부터 그런 징후를 느꼈네. 그러나 그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이제 상태가 아주 악화됐어. 나의 가장 좋은 시절은 황급히 사라지고 있다네.

남은 건 오로지 슬픈 체념뿐이지. 물론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청력 상실의 고통이 엄습하고 있을 무렵, 베토벤은 그 절망을 한 여인을 통해 위로받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14세 연하의 여인 줄리에타 귀차르디(Giulietta Guicciardi(1784-1856))였습니다.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베토벤에게 레슨을 받으러 찾아온 것은 1800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열여섯 살 때였습니다.

자신의 사촌언니인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도 베토벤의 피아노 제자였는데, 그렇게 사촌 집안을 통해

'베토벤 선생'을 소개받고 피아노를 배우러 왔던 것입니다.

한데 이 귀차르디는 자유분방한 기질의 여성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빈의 사교계에서 많은 남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그녀에게 완전히 빠졌던 것 같습니다.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네. 2년만에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지.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분이 다르다네."

 

월광(Mondschein) 이라는 닉네임으로 널리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14번 c샤프단조>는 바로 그녀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물론 '월광'은 베토벤이 붙인 표제가 아닙니다.

시인이며 음악비평가이기도 했던 루드비히 렐슈타프가 1악장을 가리켜

"스위스 루체른 호수의 달빛 아래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라고 비유했던 것이 '월광' 이라는

명칭의 유래입니다. 

이 시인이 그렇게 비유한 것이 1832년의 일이니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5년이 더 흐른

시점입니다.

베토벤이 애초에 이 곡에 붙인 정식 명칭은 '환상곡풍 소나타'입니다.

자유로운 즉흥곡풍으로 시적인 정취를 담아내려 했던 베토벤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특히 1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가 그렇습니다.

어쩌면 베토벤은 귀차르디와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고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사랑이 끝나리라는 것을 예감했을 겁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분이 다르다네" 라는 독백에서

그런 여운을 풍깁니다.

그래서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느리게, 한 음 한 음을 깊게 눌러서' 라는 뜻의 이 지시어에서는

'시간아 멈추어다오' 라는 베토벤의 동경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소스테누토'라는 말은 앞으로 선뜻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는 지시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대개의 베토벤 음악들이 성큼성큼 직진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딴따단, 딴따단' 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셋잇단음표가 그렇습니다.

2악장은 앞의 악장에 비해 밝고 산뜻합니다.

리스트가 "두 심연 사이에 핀 한 다발의 꽃"이라고 비유했던 악장입니다.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1악장과 격렬하고 뜨거운 3악장을 연결시켜주는 2분이 조금 넘는 짧은 악장입니다.

프레스토 아지타토(Presto agitato(매우 빠르게, 격한 감정을 담아서))라는 지시어를 가진 3악장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됩니다.

2악장이 끝나자마자 휴지부없이 거칠게 몰아치는 악장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강렬하게 등장하는 펼침화음이 인상적입니다.

펼침화음이란 화음을 구성하는 음들을 한꺼번에 울려내지 않고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뜻합니다.

화음의 덩어리를 연주하지 않고 음들을 낱낱이 연주한다는 뜻에서 분산화음(arpeggio 아르페지오)

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렇게 격렬하게 상승하는 아르페지오가 3악장의 첫 번째 주제입니다.

경과부를 거치고 이어지는 두 번째 주제는 좀더 어둡고 선율적입니다.

하지만 느릿한 템포의 선율이 아니라 아주 빠르게, 거의 급박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선율입니다.

'딴딴딴딴' 하면서 끊어 치는 주법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화음을 흩어서 연주하는 첫 번째 주제, 그리고 보다 선율적으로 흘러가는 두 번째 주제를

기억하면서 3악장을 들어보면 좋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느리고 서정적인 1악장으로 시작해서, 2악장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다가,

3악장에서 마침내 뜨거운 열정을 터뜨리는 음악입니다.

서른한 살 베토벤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던 사랑의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추천음반을 보자면,

1. 빌헬름 켐프 (1965년. DG) 음반입니다.

빌헬름 캠프는 빌헬름 박하우스와 더불어 1950-60년대의 베토벤 연주를 주도했던 인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박하우스는 스케일이 크고 호방한 연주를 들려준 거장이지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서가 더욱

중요하진 오늘날의 감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피부에 살갑게 와 닿는 연주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에 비해 켐프의 연주는 여전히 현대인들의 감성에 어필합니다. 음악적으로 탄탄한 구조의

구축은 물론이거니와 서정적 선율미와 감각적 음색의 구현 등에서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습니다.

 

2. 알프레트 브렌델 (1975년. Philips) 음반입니다.

알프레트 브렌델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모두 세 차례 녹음했습니다. 추천음반은 1975년 녹음입니다.

국내 라이선스로 발매돼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8번 비창과 14번 월광, 15번 전원, 17번 템페스트,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 26번 고별 을 함께 수록한 CD 2장짜리 음반입니다. 다만 브렌델이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구입하려고 한다면 1990년대의 디지털 녹음을 권합니다.

 

3. 에밀 길렐스 (1980년. DG) 음반입니다.

월광에서 반드시 들어봐야할 연주로 추천합니다. 갈렐스는 비록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지는

못했지만, 힘과 서정미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언제나 1순위로 거론됩니다. 특히 '월광'의 3악장에서

보여주는 피아니즘은 눈부십니다. 갈렐스의 연주에 대해서는 대체로 '빠르고 강하게 친다'는

평가가 많지만 실제로 월광에서 그가 구현하는 템포는 켐프에 비해서도 느긋하게 들립니다.

1악장에서의 선율미는 '강철타건' 이라는 별칭이 무색할 만치 아름답습니다. 특히 3악장에서는

'빠르고 격렬함'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그러면서도 음악적 긴장감에서 흐트러짐 없는

연주를 펼쳐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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