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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슈베르트 - 송어

돌아온아톰 2017. 4. 28. 13:03


슈베르트(1797-1828, 오스트리아)는 19세기 독일 가곡의 기초를 세웠으며 완성시켰습니다.

적어도 가곡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그가 평생 흠모했던 베토벤, 모차르트도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슈베르트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와 형들이 모두 음악을 좋아하여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들로 부터 음악 수업을 받았으며 유달리 고운 목소리를 지녀 열한 살이던 1808년에

오스트리아 빈 궁정의 소년합창단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입니다.

물론 이 합창단 출신의 대가(大家)는 슈베르트 말고도 하이든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이든이 그랬던 것처럼 슈베르트도 변성기에 이르러 합창단에서 나올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1813년 가을, 목소리가 슬슬 걸걸해지기 시작한 슈베르트는 매주 성가를 불러야 했던 의무에서 벗어납니다.

훗날 교사직을 스스로 때려치웠던 슈베르트의 기질로 볼 때, 어른 슈베르트가 매주 예배시간에 성가를

부르는 것을 그다지 신나는 일로 여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슈베르트는 매우 중요한 음악 교육을 받습니다.

빈 궁정에 소속된 음악가들이 합창단 아이들의 선생이었는데, 그중에는 당대의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도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빈 궁정악단의 악장이었습니다.

'노래하는 소년기'를 보낸 슈베르트가 음악가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바로 가곡(Lied:리트.독일의 가곡)을

통해서입니다.

31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그는 자그마치 1,000곡이 넘는 음악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약 600곡이 가곡입니다.

사실 낭만주의를 선도했던 장르는 음악 이전에 문학(시)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문학의 낭문주의가

음악으로 유입되는 장면에 바로 '가곡'이 중요하게 자리해 있습니다.

슈베르트와 슈만의 역할이 특히 컸습니다.

그런데 슈베르트의 가곡들이 보여주는 세계관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매우 염세적이었습니다.

그의 가곡들은 꿈과 현실의 이중구조를 보여주는 경우들이 많은데, 안락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현실은

혹독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외롭다는 술회들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예컨대 슈베르트가 18세이던 1815년에 작곡했던,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마왕>을 보겠습니다.

이 가곡은 늦은 밤에 마차를 타고 달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아들은 얼굴을 가린 채 아버지에게 마왕이 보인다고, 마왕이 내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호소합니다.

물론 여기서 마왕은 사신(死神)상징합니다. 겁에 질린 아버지는 "그건 안개일 뿐이란다. 어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는 집으로 가자" 면서 아들을 달래 서둘러 집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됐나요? "그런데 품속의 아이는 죽어 있었네" 라는 가사로 끝납니다.

이렇듯 그의 가곡은 염세적 세계관으로 가득합니다. 가곡은 물론 이거니와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한

실내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거론하면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슈베르트의 밤)입니다.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만들었던 예술모임, 일종의 동아리라고 보면 됩니다.

밤마다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낭송하고 문학을 토론했을 뿐만 아니라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을겁니다.

슈베르트와 어린 시절부터 절친했던 아홉 살 연상의 친구 요제프 슈파운, 시인 요한 마이어호퍼,

화가 쿠펠비저, 하이 바리톤으로 유명했던 당대의 성악가 미하엘 포글 등이 이 모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가난했던 슈베르트는 이렇듯 친구들과 어울리며 현실의 궁핍을 위로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음악은 번듯한 콘서트홀보다는 작고 은밀한 살롱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대적 상황이 깔려 있습니다.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자신들만의 아지트로 몰려들었던 것은 이른바 '비더마이어 시대'(Biedermeierzeit)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때가 언제냐면 나폴레옹 전쟁의 사후 수습을 위해 빈 회의가 열렸던 1815년 부터 1848년의 3월 혁명까지를

가리킵니다. 빈회의를 주재했던 인물은 오스트리아의 철혈재상 메테르니히였습니다.

겉으로는 유럽 열강의 번영과 조화 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했지만, 실제로는 유럽의 질서를 프랑스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 반동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왕정복고 시대로도 불립니다.

이 시대는 살벌하고 억압적인 경찰국가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그러니 젊은 예술가들이 아지트로 숨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광장에서 밀실로'의 상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이 모여들었던 슈베르티아데는 바로 그런 시대의 산물입니다.

 

화재를 달리해서, 현대인들은 '낭만'의 결핍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날 처해 있는 현실은 '결핍'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아주 극단적인 낭만의 고갈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돌이켜보자면 우리는 오래도록 낭만을 조소하며 살아왔습니다.

'낭만적'이라는 말은 몽상적이거나 현실도피적인 것, 뭔가 철이 안 든 한심한 것을 지칭하는 의미로

빈번히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의 용법은 우리가 얼마나 경쟁적이고 실리추구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를 방증합니다.

이른바 속전속결의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은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렸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점점

왜소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날의 생존에 쫓기면서 종종걸음으로 내달리는 사람들에게 낭만은 이제 기억조차 희미한,

박물관의 화석처럼 되고 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여전히 낭만을 꿈꾸는 행위인듯 합니다.

한 곡의 음악을 듣고 감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예술성을 다시 발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낭만이란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예술가적 재능을 일깨워 각자가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전체로 만드는것" 입니다.

그리하여 "나와 타인, 인간과 자연과의 통일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따로 또 같이" 사는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음악사에서 '낭만'을 거론할 때 떠오르는 음악가들은 세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베토벤에서 잉태된 낭만은 슈베르트와 슈만, 낭만적이면서도 고전적 기풍을 중시했던 멘델스존, 프랑스 낭만주의의

꽃을 피운 베를리오즈, 음악극으로 새로운낭만의 장르를 개척한 바그너, 피아노 한대로 낭만의 진수를

펼쳐보였던 쇼팽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19세기 후반부로 접어들어 활약했던 브람스와 브루크너,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음악은 이른바

'후기 낭만'의 시대를 이뤘습니다.

그렇게 숱한 음악가들이 낭만의 시대를 장식했고, 오늘날 우리가 가장 즐겨 듣는 음악들이 대체로 이 시대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슈베르트의 실내악곡 <피아노5중주 A장조 D.667>은 "송어'(Die Forelle)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이른 봄에 들으면 제격입니다.

절기로 따지자면 입춘이나 우수 무렵입니다.

우수는 말 그대로 얼음이 풀린다는 의미, 또는 봄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는 뜻도 있습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은 '사시'라는 시에서 봄의 이미지를 물로 표현했습니다.

'춘수만사택'이라는 시구입니다. '봄물은 못마다 가득하도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봄의 이미지가 제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시인의 마음속에서는 '물'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5중주 A장조 D.667>이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얼음 풀린 계곡에서 상쾌하게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물론 '송어'라는 이름 때문에 그런 인상이 짙은 것도 사실입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의 4악장에서 1817년 작곡했던 가곡 <송어>의 선율을 주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송어'라는 별칭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이 곡의 별칭을 '숭어'로 표기해 왔습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치 유명한 곡인데도 일제강점기 때부터 잘못 사용해온 '숭어'를 그대로

써왔던 것입니다.

불과 5년 전 쯤에야 바로 잡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어(영어로 'Trout')와 숭어(영어로 'Mullet')는 엄연히 다른 물고기입니다.

송어는 민물에서 사는 고기이고, 숭어는 기본적으로 바닷고기입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살지요.

그래서 국내에서는 경기도 김포 전류리에 가면 숭어횟집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스물두 살이던 1819년 친구인 미하엘 포글과

여행을 떠났습니다.

포글은 당대의 유명한 바리톤 가수였는데 슈베르트보다 29년 연상이었습니다.

슈베르트는 스무 살이 되던 1817년에 포글과 알게 됐는데, 그 후 포글은 슈베르트의 가곡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가곡 <송어>를 초연한 가수도 바로 포글이었습니다.

슈베르트와 그는 친구처러 우정을 나누면서 모두 세 번의 여행을 같이합니다.

1819년에 여행했던 곳은 포글의 고향인 슈타이어였습니다.

오스트리아 북부의 고지대에 있는 도시입니다.

슈베르트는 이곳에서 매우 즐겁게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좋은 경치와 친구의 배려 덕택이었습니다.

게다가 슈타이어의 음악애호가들은 슈베르트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음악 연주를 청해 듣곤 했습니다.

저택의 살롱에서 연주했으니 주로 여흥을 위한 음악, 다시 말해 '디베르티멘토'풍의 음악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슈베르트를 초대했던 슈타이어의 유지 가운데 한 명인 광산업자이자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던

질베스터 파움가르트너가 바로 피아노5중주의 작곡을 의뢰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곡에 디베르티멘토풍이 반영돼 있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입니다.

데베르티멘토는 18세기 후반에 귀족들의 여흥을 위해 유행했던 기악곡입니다.

일부 귀족들을 직접 악기를 들고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파움가르트너가 슈베르트에게 부탁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슈베르트의 악보를 필사해 작품의 소실을 막았던 친구 알베르트 슈타틀러의 기록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사랑스러운 가곡 <송어>에 매료된 파움가르트너의 부탁으로 이 곡을 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아노 5중주 A장조>의 작곡연도는 좀 불분명합니다.

일반적으로 1819년으로 알려져 왔지만, 슈베르트는 포글과 함께 1823년과 1825년에도 슈타이어를 여행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곡은 슈타이어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에서 보낸 기분 좋은 나날들, 아울러 곡을 의뢰한

파움가르트너의 요구에 부응하는 디베르티멘토풍의 우아함과 경쾌함이 잘 살아 있는 음악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독특한 악기 편성입니다.

피아노 5중주는 대체로 '피아노와 현악4중주'로 이뤄지는 법인데, 슈베르트는 제2바이올린을 아예 제외하고

그 대신에 콘트라베이스를 배치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이뤄진 편성입니다.

이 역시 파움가르트너의 요청 때문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슈타틀러는 "훔멜의 5중주와 같은 편성의 곡을 파움가르트너가 희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1악장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상쾌하고 청명합니다.

피아노를 비롯한 네 대의 현악기가 서주부를 연주한 뒤에 바이올린이 첫 번째 주제를 제시합니다.

가요풍의 아름다운 선율입니다. 피아노가 이에 호응합니다.

두번 째 주제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연주합니다.

앞의 주제에 비해 약간 애상적인 듯하지만, 피아노가 담백한 터치로 이어받습니다.

발전부와 재현부에서는 빈번한 조바꿈이 일어나면서 음악의 표정에 다채로운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2악장은 느린 안단테 악장입니다.

서정적인 분위기가 짙습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먼저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서정적인 선율을 느리게 제시합니다.

두 번째 선율은 비올라가 주도합니다. 짙은 애상감을 풍기는 단조의 선율입니다.

이어서 잘게 쪼개지는 듯한 현악기들의 반주 위에서 피아노가 리드미컬한 선율을 연주합니다.

이 3개의 악상을 조를 바꿔 한차례 더 재현합니다.

이어지는 3악장은 프레스토로 템포가 빨라지는 활기 넘치는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위트 넘치는 분위기가 펼쳐집니다. 중간부에서 템포가 느려졌다가 다시 원래의

속도로 되돌아옵니다.

4악장이 바로 그 유명한 <송어>의 선율을 변주하는 악장입니다.

먼저 현악기들이 주제 선율을 한차례 연주하고 그것을 다섯 차례 변주합니다.

가장 먼저 피아노가, 이어서 비올라가, 그 다음에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변주를 이끕니다.

네 번째 변주에서는 조바꿈이 일어나면서 음악이 격렬하고 화려해집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변주에서도 조바꿈이 일어나면서 첼로가 멋들어진 선율을 연주합니다.

바로 이렇게 여러 악기가 다양한 변주를 선보이는 것이야말로 4악장의 매력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템포가 약간 빨라지면서 다시 원래의 선율로 돌아옵니다.

5악장에는 알레그로 주스토 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하라는 뜻이지요. 템포감이 확연히 느껴지고 밝고 산뜻한 악장입니다.

연주를 듣다보면 슈베르트가 왜 '알레그로 주스토'라고 지시했는지 금방 감지할 수 있습니다.

속도감 넘치는 악장인 데다가 명확하게 분절되는 듯한 악상들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때때로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합니다.

피아노와 네 대의 현악기가 한데 어울려 격렬하게 고조되면서 마지막 방점을 찍습니다.

참고로, 슈베르트의 곡 뒤에 붙는 D번호는 오스트리아의 음악문헌학자인 오토 에리히 도이치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998곡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해 번호를 매겼습니다.

그것이 바로 D번호입니다. '도이치 번호'라고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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