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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모차르트 - 엘비라마디간

돌아온아톰 2017. 4. 28. 13:16

모차르트가 남긴 협주곡은 모두 40여 곡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비롯해 호른, 클라리넷, 바순 같은 관악기들을 위한 협주곡도 있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이 가장 많습니다. 30곡에 가깝습니다.

모차르트 본인이 피아노의 명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친근하게 여겼던 악기는 역시 피아노였던 까닭입니다.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는 당연하게도 피아노의 조상 악기인 쳄발로(하프시코드)를 연주했을 것이고,

그 악기를 염두에 두고 곡을 썼을 겁니다.

기록에 따르자면 모차르트가 피아노(클라비어)를 처음 본 것은 1777년, 그러니까 스물한 살 때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모차르트는 매우 흥분해서 아버지에게

"이 악기는 대단합니다. 악기의 왕이 될 거예요.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답니다"

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특히 모차르트는 1781년 빈으로 이주한 다음부터 피아노 협주곡의 걸작들을 숱하게 작곡합니다.

모두 17곡을 빈 시절에 썼습니다.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했던 1782년 8월 이후부터 이듬해 초까지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잇달아 작곡했습니다.

그것이 '11번 F장조(K.413)', '12번 A장조(K.414)', '13번 C장조(K.415)' 입니다.

이 세 곡을 '1782년 세트'라고 부릅니다.

이 곡들은 모차르트가 빈으로 이주해 처음 선보인 피아노 협주곡들인데, 음악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확연히 드러냈던 빈 시절 중,후반기의 걸작들과 비교하자면 특히 그렇습니다.

아마 모차르트도 처음에는 좀 두려웠을 겁니다.

적잖은 고생 끝에 빈으로 들어섰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서 자리르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모차르트도 빈의 유력자들이 어떤 취향과 기호를 가졌는지를 살펴야 했을 테고,

자신이 음악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펼쳐놓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점차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피아노 협주곡들을 선보이기 시작하고 빈 시절의 중,후반기에는

이른바 걸작들을 속속 써냅니다.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은 세상을 떠나던 해에 썼던 27번 B플랫장조(K.595)입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특히 여성 피아니스트들에게 중요한 레퍼토리로 인식되곤 합니다.

물론 남성 연주자들 중에서도 빼어난 연주를 남긴 이들이 적지 않지만,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감성적으로 더 섬세한 여성 피아니스트에게 좀더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의 연주는 들어 볼 만합니다.

짙은 그늘을 드리운 피아노 음색은 물론이거니와, 조금의 과장도 없이 음악 자체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차분한

연주도 들으면 들을 수록 매혹적입니다.

포르투갈 태생의 그녀는 '세계적 피아니스트'라는 호칭에도 아랑곳없이 '파두(fado:포르투갈의 민중음악)'가수의

반주자로 무대에 설 만큼 '열린 음악가' 입니다.

모차르트는 스물다섯 살이었던 1781년에 빈으로 이주했고 그 이듬해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리랜서 음악가'로서의 모차르트의 삶이 시작됐다고 얘기합니다.

교회와 귀족의 간섭에서 벗어나, 작곡이나 연주에 대한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본주의형 음악가'의

출현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당시의 모차르트는 음악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커다란 지각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릴 때부터 혹사당해온 이 천재에게 엄청난 중노동을 다시금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빈으로 이주해 한 집안의 가장이 된 모차르트는 이전보다 한층 더 작곡과 연주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바로 피아노였습니다.

모차르트는 날마다 피아노를 교습하면서 레슨비를 받았고 협주곡을 써서 작곡료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회를 수시로 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해 돈을 벌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당구를 치면서 해소하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 과로와 중노동의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걸작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창작력이 가장 고조된 시기에 이르러 있었고,

말년의 걸작들은 바로 그 지점, 한 천재적 예술가의 빛나는 에너지가 마지막 불꽃처럼 산화하던 시기에

세상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물론 그 유명세는 영화 <엘비라 마디간>(1967) 덕택입니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미국의 빌보드 탑10에까지 올라갔을 정도입니다.

<엘비라 마디간>은 1960년대에 제작된 영화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인상파적 영상미를 아름답게 연출했던

영화입니다.

그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협주곡 21번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악장으로 손꼽히는 2악장 안단테가

곳곳에서 흘러나옵니다.

덕분에 협주곡 21번의 '별칭'이 바뀌는 일까지 생깁니다.

원래 이 협주곡의 별칭이었던 '군대'가 '엘비라 마디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군대'라는 별칭도 모차르트가 붙인 건 아닙니다.

행진곡풍으로 당당하게 시작하는 1악장 때문에 후대 사람들로부터 얻은 닉네임이었습니다.

어쨌든 영화 <엘비라 마디간>이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다음부터, 이 협주곡은 그냥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게 됩니다.

음반가게에 가서 "엘비라 마디간 주세요"하면, 협주곡 21번을 곧바로 꺼내줬을 정도입니다.

2030세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듯한데 대충 영화의 내용을 보자면,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눕니다. 하지만 차마 쏘지 못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나풀나풀 날아옵니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그 나비르 쫓아갑니다.

그녀가 나비를 막 손에 잡으려는 순간 화면은 멈춥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두 발의 총성.

아름다운 초원에서 인상파 그림 같은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면서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죽어갑니다.

참으로 지독한 낭만주의입니다.

엘비라는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소녀였습니다.

육군 중의 식스텐과 사랑에 빠집니다.

전쟁을 혐오하는 식스텐은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리고

엘비라와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도피행각을 쫓아갑니다.

그 도피는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합니다.

두 사람은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수시로 세어보고,

허기에 지친 엘비라는 토끼풀을 뜯어 먹기도 합니다.

국내 모기업의 CF에 등장했던 유명한 장면, 서로 다투던 남녀가

'미안하다'는 쪽지를 적어 시냇물 아래로 흘려보내던 모습도

바로 이 영화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것과 더불어 당시 열일곱 살에 불과했던

발레리나 출신의 여배우 피아 데게르마르크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어 버립니다.

청순하기 이를데없는 외모의 그녀는 1967년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후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곧바로 대중의 노리에서 잊히고 맙니다.

모차르트가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작곡한 해는 빈에서 보낸 '생애 마지막 10년'의 딱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1785년입니다. 이해에도 모차르트는 3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잇달아 써냅니다.

20번부터 22번까지입니다.

특히 21번은 20번을 작곡하고 난 후 불과 한 달도 안 돼 세상에 첫 선을 보입니다.

이렇게 속전속결로 걸작을 써냈던 것에 대해, 후대의 음악사가들은 대개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라는

맥락으로 해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현실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었기도 합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18세기에 음악가들의 생계는 귀족, 왕실, 때로는 종교 후원자의 손에 의해 좌우됐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양상이 달라집니다.

여전히 정치권력을 놓지 않고 있던 귀족과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부르주아계층, 그 양쪽의 지원에 의지했던

'양다리 걸치기'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모차르트가 빈으로 이주한 18세기 후반은 말하자면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실과 귀족의 눈치를 살피는 한편, 자신이 쓴 곡의 악보 판매와 스스로의 이름을 내건 연주회의 인기

정도에 따라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모차르트에게 가족의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두 개의 수입원은

피아노 레슨과 연주회였죠.

그중에서도 연주회는 항상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숙제였을 겁니다.

물론 그 연주회들은 모두 '예약' 연주회였습니다.

올 손님들이 이미 정해진 연주회였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주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이었는데, 모차르트의 연주회에 단골로 찾아오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모차르트는 지난번에 했던 곡을 다시 반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난번 연주했던 곡과 새로 선보일 곡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야 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지난번에 오셨던 손님이 이번에 또 오셨는데, 분위기가 비슷한 곡을 잇달아 연주하면 손님들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뭔가 '색다른 음악'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항상 느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20번에 이어 21번이 나오게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d단조(단조는 소문자로 씁니다)의 조성을 지닌 20번과 C장조(장조는 대문자로 씁니다)의 조성을 가진 21번은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입니다.

20번이 전반적으로 어둡고 격정적인데 비해, 21번은 맑고 밝아서 개구쟁이 같은 느낌마저 풍기는 곡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차르트가 대책없이 개구쟁이 짓을 한다는 것은 아니고 밝음의 정조(情操)를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음악의 격조를 유지합니다.

느린 2악장에서 보여주는 슬픔도 지나친 감상으로 빠지지 않으면서 애잔한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협주곡 21번은 그렇게 '웃음과 슬픔의 2중주'라는 모차르트 특유의 음악적 형태를 선명히 보여줍니다.

1악장은 '군대'라는 별칭의 이유가 됐을 만큼 행진곡풍으로 당당하게 문을 엽니다.

C장조의 으뜸화음으로 제시되는 주제부를 머릿속에 새기면 도움이 됩니다.

계이름으로 '도솔도미 파미레도시'입니다.

관현악 총주가 그 주제부를 여러 차례 반복한 다음, 피아노가 산뜻하게 등장합니다.

기교적으로도 현란하죠. 그런데 잠시 후에 피아노 독주가 어두운 단조의 선율을 아주 잠깐 연주합니다.

바로 그 지점, 피아노가 갑자기 선율적으로 어두워지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그 우울한 정조는 금세 사라지고 다시 장조의 밝은 색채로 돌아옵니다.

피아노가 보여주는 이런 색채감, 아울러 피아노와 관현악 파트가 주제 선율을 서로 주고받는

장면들에 집중하면서 1악장을 들으면 재미가 있습니다.

2악장은 그 유명한 안단테입니다.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든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잔잔한 물결 같은 주제 선율을 노래하고

피아노가 이어받습니다. 아무런 설명없이 그냥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악장입니다.

3악장은 약간 수다스러운 느낌으로 시작합니다.

현악기들이 짧은 음형을 새가 지저귀듯이 노래하고 관악기들이 거기에 가세하면서 음량이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피아노가 등장합니다.

역시 약간은 수다스러운 느낌으로 피아노가 달려 나가고 관현악이 리드미컬하게 나옵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관현악이 대화를 주고받다가 매우 화려하고 강력한 느낌으로 곡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1악장은 행진곡풍의 당당함, 2악장은 애틋한 슬픔, 3악장은 경쾌하면서도 약간 수다스러운

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과 관련한 추천음반을 본다면,

1. 게자 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1961년. DG) 음반입니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게자 안다(Geza Anda)의 연주입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의 피아니스트 안다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것은 물론 21번입니다. 그는 이 녹음에서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지휘까지 겸하고 있는데, 특히 2악장 안단테의 서정미는 그 어떤 피아니스트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음반 표지에 등장하는 챙이 넓은 흰색 모자를 쓰고 있는 인물이 바로 영화의 여주인공.

이 영화 한 편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던 여배우 피아 데게르마르크입니다.

 

2. 프리드리히 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4년. DG) 음반입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감상하려는 분이라면 한 번은 거쳐야할 필수 음반이라고 합니다.

알려져있다시피 모차르트의 협주곡들은 솔로 악기가 피아노가 됐건 바이올린이 됐건,

듣는 이들에겐 편안하지만 연주자들에겐 고역인 경우가 많습니다. 얇고 투명한 음악적 질감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실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굴다는 이 얇은 텍스처의 맛을 누구보다도 잘 소화하는 피아니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명징하고 산뜻한 터치, 자유로운 느낌을 풍기면서도 고전적 품위와 격조를 잃지 않는 연주,

그것이 이 음반의 미덕입니다.

 

 

3. 머레이 페라이어,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1976-1984. Sony) 음반입니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1974년 부터 1984년까지 10년에 걸쳐 모차르트의 협주곡 전곡을 녹음했습니다.

<21번 K.467>은 그중에서도 호평받는 명연입니다. 적절한 파워를 유지하면서도 멜로디 라인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평입니다. 오케스트라도 뒤로 빼거나 너무 나서지 않고

독주와 적절하게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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