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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라벨 - 볼레로

돌아온아톰 2017. 4. 27. 13:36

인상주의의 요체인 '음악의 회화성'은 라벨에게서도 고스란히 발견됩니다.

예컨대 라벨은 1901년 작곡했던 <물의 유희>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나는 떠들썩한 폭포, 분수,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 이 곡의 영감을 얻었다"

또 이 곡보다 3년뒤에 작곡했던 <거울>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언급을 남겼습니다.

이 음악은 모두 5곡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2곡 '슬픈 새들'에 대해 라벨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새들은 여름의 가장 더운 시간에 아주 어두운 숲 속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다"

이렇듯 인상주의적 회화성을 보여주는 라벨의 음악들은 허다합니다.

1907년에 작곡한 <스페인 랩소디>도 다채로운 음색으로 인상주의적 화폭을 펼쳐놓고 있습니다.

그 이듬해에 작곡한 피아노걸작 <반의 가스파르>도 1악장 '온딘'(물의 요정)에서 화려한 테크닉으로

물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벨이 드뷔시와 더불어 프랑스 인상주의의 계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라벨만의 독창성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해 라벨의 음악은 회화를 지향하면서도 드뷔시와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예컨대 앞에서 소개했던 드뷔시의 <달빛>과 <바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같은

음악들은 매우 몽환적이고 불투명합니다.

언어에 비유하자면 음절과 음절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둥둥 떠다니는 듯한 화성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반면에 라벨의 회화는 보다 투명하고 명확합니다.

 

어찌들으면 건조하고 날카로운 느낌이 들 때도 종종있습니다.

드뷔시에 비해 훨씬 율동감이 강조돼 있는 곡들도 많습니다.

드뷔시의 음악이 일부러 윤곽선을 흐릿하게 뭉개놓은 그림이라면 라벨은 좀더 분명한 색감과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할수있습니다.

정교한 것, 깔끔한 것을 좋아했던 라벨의 기질이 그렇게 음악에 투영돼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라벨의 음악적 특징으로 이국풍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스페인의 분위기가 물씬한 곡들이 많습니다.

라벨의 스페인풍에는 뿌리 깊은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그는 1875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역인 바스크 지방의 시부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피에르 조제프 라벨은 스위스 태생의 철도 토목기사였고 어머니 마리 들루아르는

대대로 바스크에서 살아온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프랑스보다 스페인에 훨씬 가까운 혈통입니다.

라벨이 선호했던 스페인풍은 바로 거기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유추됩니다.

어머니 마리는 라벨이 42세였을 때 세상을 떴는데 라벨이 평생 결혼하지 않은 배경에는 어머니에

대한 강한 애착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1928년에 작곡했던 <볼레로>는 바로 그 스페인 풍을 진하게 느끼게 하는 음악입니다.

뿐만 아니라 라벨이 남긴 음악 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유명한 곡으로 손꼽힙니다.

이 곡과 관련해 라벨은 이렇게 말합니다.

"1928년 이다 루빈슈타인의 요청에 따라 나는 관현악을 위한 <볼레로>를 작곡했다.

상당히 느린 무곡으로 선율, 화성, 리듬이 시종일관 반복되며 특히 리듬에서 작은 북소리가

끊임없이 뒤따른다. 이 곡에서 변화의 요소는 관현악 합주부분의 크레센토 밖에 없다"

볼레로는 18세기에 생겨난 스페인의 전통춤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곡이 실제 볼레로가 지닌 리듬이나 템포와 다르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생전의 라벨은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일축했다고 합니다.

연주시간 15분가량의 이 관능적인 음악은 작곡된 그 해에 파리오페라극장에서 발레공연으로 초연돼

엄청난 인기를 얻습니다. 라벨 스스로도 설명했듯이 곡의 진행은 매우 단순합니다.

작은북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한 리듬을 반복합니다.

그와 동시에 두 개의 주제 선율을 계속 반복하면서 점차 음량이 고조됩니다.

바로 그 음량의 점차적 고조 라벨의 표현을 다시 빌리자면 "관현악 합주부분의 크레센도"가

이 음악의 유일한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 듣다보면 음악적 묘사가 매우 세밀하고 음색의 변화가 미묘하다는걸

느낄수 있습니다.

역시 라벨은 정교한 음악의 장인 혹은 '색채의 마술사'라는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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